뒤처져도 괜찮다는 말, 정말일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프레임워크, 프로그래밍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대한 소식이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다.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영영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공포가 우리를 지배한다. 주변에서는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기회를 영원히 놓칠 것이라며 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느끼는 이 불안함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일까? 최근 한 기술 블로그에서 읽은 흥미로운 관점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다.

테렌스 에덴이라는 블로거는 '뒤처져도 괜찮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기술적 소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과거에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에 뛰어들라고 권유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돈의 미래라며, 지금 들어오지 않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암호화폐가 더 유용해지고, 변동성이 줄어들고, 사용하기 쉬워지며,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그는 질문했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뒤처진다는 말인가?’ 만약 어떤 기술이 정말 인류를 경제적 고통에서 해방시킬 것이라면, 그것은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기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회를 잃는다면, 그것은 혁명적인 기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기나 다단계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포모(FOMO)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암호화폐 열풍 당시 유행했던 '가난하게 살면서 즐거워해라’라는 말은 사람들의 회의론을 꺾고 불안감을 무기화하는 음험한 방식이었다. 테렌스 에덴은 현재의 인공지능 도구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 도구들을 사용해봤지만, 그중 일부는 훌륭하고 대부분은 조금 엉성하며 자신에게 정말 유용한 것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이 거품이 걷히고 기술이 실질적인 가치를 증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구글 독스가 곧 나올 텐데, 굳이 도스용 워드스타를 배우는 데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는 깃(Git)의 사례를 들며 설득력을 높였다. 깃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바로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술이 안정되고 직업 시장에서 그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어렵지 않게 깃을 익혔다. 만약 초기부터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다면 효율성이 7퍼센트 정도 더 높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차이가 인생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석사 과정 중에 메타버스를 연구하며 가상현실 장비를 다루는 법을 배웠지만, 그것이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 경험을 언급했다. 초기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사라질 기술에 시간을 낭비할 위험도 공존한다.

이 블로거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매시간 1만 6천 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은 모두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 그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인공지능을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가 뒤처진 낙오자가 될까? 당연히 아니다. 기술이 정말로 유용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시점에 그 기술을 습득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새로운 유행에 조급하게 올라타는 것은 스트레스만 유발하고 비용만 낭비할 뿐이다. 때로는 남들이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갈 때 뒤에 남아 책을 읽으며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테렌스 에덴이 말한 '기다림의 미학’은 대부분의 기술적 도구에는 완벽하게 적용된다. 깃을 나중에 배운다고 해서 내 프로그래밍 실력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코드를 관리하는 방식의 변화일 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야기가 다르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적 활동 자체를 모방하고 대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깃을 모르면 나중에 배우면 그만이지만, 인공지능을 모르면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 혹은 인공지능 그 자체에 의해 내 역할이 대체될 수 있다는 실존적 위협이 존재한다.

과거의 기술들은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는 도구였다. 포크레인이 발달했다고 해서 삽질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았고, 단지 더 효율적인 수단이 생겼을 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삽질하는 사람의 근육뿐만 아니라, 어디를 파야 할지 결정하는 뇌의 기능까지 수행하려 한다. 생산성의 격차가 과거의 도구들처럼 5퍼센트나 10퍼센트 수준이 아니라,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공포의 핵심이다. 깃을 사용하지 않는 개발자와 사용하는 개발자의 차이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획자와 그렇지 않은 기획자의 결과물 차이는 훨씬 더 압도적일 것이다.

테렌스 에덴의 글에 달린 댓글 중에는 '모두가 벼랑을 향해 달려갈 때 뒤처지는 것은 괜찮다’는 표현이 있었다.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을 둘러싼 지금의 열풍 속에는 수많은 거품과 과장이 섞여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것 같던 기술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성격이다. 어떤 기술은 단순히 편리함을 더해주지만, 어떤 기술은 생태계의 규칙을 통째로 바꾼다. 나는 인공지능이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기다림이 미덕이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나중에 시작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의 진입 장벽과, 기다리는 동안 내 위치가 보존된다는 보장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학습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있으며, 이를 먼저 활용해본 사람들과의 경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더 정교해지면 배우기 쉬워질 것이라는 테렌스 에덴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그 쉬워진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게 될 때 내 전문성은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 자문해봐야 한다. 기술이 쉬워진다는 것은 곧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의 희소성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테렌스 에덴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인공지능 뉴스에 일일이 반응하며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나오는 수많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 중 상당수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의 수많은 검색 엔진 중에서 구글만 살아남았고, 수많은 웹 브라우저 중에서 크롬이 시장을 장악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어떤’ 인공지능이 승리할지 맞추기 위해 혈안이 되어 돈을 쏟아붓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흐름 자체를 외면하고 뒤처지는 것을 즐기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가혹하게 변하고 있다.

뒤처져도 괜찮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불필요한 유행과 사기적인 마케팅에 휘둘리지 말라는 점에서는 백번 옳다. 하지만 인류의 지적 노동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위해 뒤에 남을 것인가’와 '어떤 변화에 올라탈 것인가’를 냉철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남들이 벼랑으로 달려갈 때 멈춰 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지각변동이 일어나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다면 새로운 땅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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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Eric Han

Posted on

2026/03/22

Updated on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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