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넘어 사랑받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

요즘 소프트웨어 개발 판도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코드를 대신 짜주는 시대가 오면서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은 이제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예전에는 돌아가기만 하면 다행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받는’ 제품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넘어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며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MVP, 즉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이라는 개념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 에릭 리스가 제안한 이 개념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고객에 대해 최대한 학습하기 위한 훌륭한 프레임워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MVP라는 용어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최소한으로 돌아가는 뼈대’ 혹은 '일단 돌아만 가는 조잡한 제품’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전락했다. 많은 팀이 '이건 MVP니까’라며 엉성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그 상태로 방치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비용이 파괴되고 있다. 과거에는 수억 원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던 기능 구현이 이제는 단 몇 달러, 혹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가능해졌다. 모든 개발자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고 있고, 심지어 코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기능’ 그 자체는 더 이상 경쟁 우위가 될 수 없다. 누구나 내가 만든 기능을 며칠 안에 똑같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능은 하나의 상품(Commodity)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하나의 아이디어나 유사한 아이디어에 너무나도 많은 구현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아이디어 자체가 희소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구현해내느냐가 관건이다. 기술적인 장벽이 낮아지면서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굳이 투박하고 불편한 제품을 참고 쓸 이유가 없다.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다른 예쁘고 친절한 제품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MVP가 아니라 MLP, 즉 최소 사랑 가능 제품(Minimum Lovable Product)을 고민해야 한다.

Elena Verna가 제안한 MLP란 개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기능이 작동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처음 마주했을 때 '와, 이건 정말 괜찮은데?'라고 느끼게 만드는 제품이다. 속도가 빠르고,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며, 제품만의 뚜렷한 주관이 담겨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면서 감정적인 연결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한 글에서 읽은 MLP에 대한 통찰은 매우 흥미롭다. 그 글의 저자는 소프트웨어 기능이 상용화되면서 기능 기반의 차별화는 무의미해졌고, 사용자와의 정서적 관계가 마지막으로 남은 방어막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역시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공지능이 기능을 밤새 구현할 순 있어도, 사용자가 느끼는 미묘한 즐거움과 감동까지 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SaaS의 욕구 단계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단계설처럼 소프트웨어에도 단계가 있다. 가장 밑바닥에는 기능성(Functional)이 있다. 제품이 돌아가고 충돌하지 않으며 약속된 일을 수행하는 단계다. 그다음은 신뢰성(Reliable)이다. 보안이 철저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위에는 사용성(Usable)이 있다. 사용하기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승부는 그 위 단계인 사랑스러움(Lovable)에서 결정된다. 사용자를 정서적으로 기쁘게 하고, 상호작용할 때마다 긍정적인 기분을 남기는 제품이다. 대부분의 제품은 기능성과 신뢰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런 차가운 뼈대 같은 제품을 견디려 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연결된 고객은 유지율(Retention)이 높고 평생 가치(LTV)도 크다. 무엇보다 그들은 스스로 제품의 전도사가 되어 주변에 소문을 낸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구 중 누군가에게 열광적으로 추천하게 되는 제품을 떠올려보자. 단순히 기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제품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나 섬세한 디테일에 반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른바 '러브 마크(Love marks)'라고 불리는 요소들이다. 이는 기능적으로는 전혀 쓸모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용자의 기억에는 가장 강렬하게 남는 요소다.

예를 들어 이메일 서비스인 슈퍼휴먼(Superhuman)은 받은 편지함을 모두 비웠을 때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여준다. 이것이 이메일을 보내는 기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사용자는 그 순간 작은 보상을 받는 기분을 느낀다. 스포티파이의 AI DJ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것을 넘어 사용자에게 농담을 던지거나 취향을 저격하는 멘트를 날린다. 이런 작은 터치들이 인간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 과거의 MVP 방식이라면 이런 요소들은 '불필요한 장식’으로 치부되어 가장 먼저 삭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디테일이 제품의 성패를 가르는 본질이 되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면 'B2B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사용자는 결국 사람이다. 정장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웃고 싶어 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원한다. 과거의 많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들은 오로지 통제와 효율에만 집중했다. 사용자가 그 도구를 쓰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B2B 영역에서도 MLP의 가치가 증명되고 있다. 사용자가 사랑하는 도구는 조직 내에서 더 빨리 확산되고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MLP를 만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능 목록이 아니라 고객에게서 시작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팀은 가치와 노력을 기준으로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지, 만들기는 얼마나 쉬운지를 따진다. 그러면 모두에게 적당히 수용 가능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제품이 나온다. 대신 특정 세그먼트를 정하고 그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파악한 뒤, 그들만이 사랑할 수 있는 기능과 경험의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로드맵에 '러브 마크’를 의도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일정이 빠듯해지면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있으면 좋은 것(Nice-to-have)'이 아니라, 제품의 핵심 가치로서 투자해야 한다. 제품이 사용자의 성공을 어떻게 축하해 줄 것인지, 오류가 났을 때 어떻게 위트 있게 대처할 것인지, 어디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런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면 더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보자. 생각보다 놀라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이게 작동하는가’가 아니라 '이게 사랑스러운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 팀의 표준이 되어야만 MVP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금칠하라는 뜻은 아니다. MLP에서도 '최소(Minimum)'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최소의 기준에 '정서적 만족’이라는 필수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주 작은 기능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안에 제작자의 취향과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한다.

결국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설계하는 일이다. 사용자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마음과 만드는 사람의 독특한 개성이 만날 때 진정으로 사랑받는 제품이 탄생한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매몰되지 말고, 자신의 색깔을 제품에 입혀야 한다. 누구나 비슷한 코드를 짤 수 있는 시대일수록, 만드는 사람의 '심장’이 담긴 제품이 빛을 발한다. 이제 소프트웨어는 다시 인격과 개성을 갖기 시작했다. 기능의 시대가 가고 감성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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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Eric Han

Posted on

2026/03/09

Updated on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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