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서비스를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진짜 이유

최근 벤처 캐피털 업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서비스 비즈니스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서비스 회사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벤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일부 유명 VC들은 이를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ervice as Software)'라고 부르며 약 4.6조 달러 규모의 기회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제너럴 카탈리스트는 법률, IT, 회계 분야의 서비스 기업을 인수하고 AI를 도입하는 데 1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쓰라이브는 관련 비즈니스 인수를 위해 10억 달러 이상의 펀드를 조성했다. 오픈AI 역시 이 과정에 엔지니어를 직접 투입하며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명확한 숫자가 있다. 전 세계 서비스 시장은 약 16조 달러 규모에 달하지만, 소프트웨어 시장은 겨우 1조 달러 수준이다. 만약 AI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소프트웨어와 같은 마진율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는 70~85%의 총마진을 유지하며 고객과 깊고 반복적인 관계를 맺는다. 반면 전문 서비스 기업은 운이 좋아야 30~40%의 마진을 기록하며,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의 일시적인 수익에 의존한다. AI가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다면 16배나 큰 시장에서 엄청난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현실은 '서비스가 소프트웨어가 된다’는 단순한 구호보다 훨씬 복잡하다. 한 벤처 투자자의 분석에 따르면, AI는 서비스 비즈니스를 '더 나은 서비스 비즈니스’로 만들고 있을 뿐이지 마법처럼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아니다. 마진이 개선되고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서비스 비즈니스의 본질적인 역학 관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고객은 단순히 결과물만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격, 브랜드 자산, 제도적 신뢰,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법적 책무를 지는 주체를 원한다.

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현재 세 가지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서비스 기업에 AI 도구를 판매하는 방식, 처음부터 AI 기반의 서비스 기업을 구축하는 방식(AI-native), 그리고 기존 기업들을 인수하여 AI를 결합하는 방식(Roll-up)이다. 각 모델은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투자자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독특한 위험 요소도 안고 있다. 과연 서비스 시장의 모든 영역이 AI로 대체 가능한지, 그리고 그 마진 확장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서비스 시장 전체가 AI의 공략 대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 서비스 지출의 상당 부분은 처음부터 결과물 그 자체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전직 컨설턴트의 증언에 따르면, 기업들이 빅4 회계법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의 감사가 독보적으로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전문가의 지침을 따랐다’는 방어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다. 규제 기관이 신뢰하는 외부 법률 고문을 고용하거나, 구조 조정을 위해 외부 컨설턴트를 불러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부 리더십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효율성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전문 서비스가 작동하는 핵심 기능이다. AI가 분석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어도 '책임 전가’나 '비난 흡수’의 역할은 수행할 수 없다. 이사회가 AI 모델을 가리키며 '우리는 전문가의 조언에 의존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AI가 주도하는 서비스 혁신의 상한선은 결국 결과물의 품질에 달려 있는 부분까지만이다. 소위 '책임 회피(CYA, Cover Your Ass)'를 위한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견고할 것이며, 이는 AI 기반 스타트업이 넘기 힘든 벽이 될 수 있다.

마진 확장 역시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경쟁사들이 동일한 AI 기능을 채택함에 따라 서비스는 가격에 따라 다시 범용화될 것이다. 고객들 또한 AI가 과거 주니어 직원이 하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비용 절감분을 자신들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마진은 AI 자동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얹어진 프리미엄과 책임 계층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세금 신고를 자동화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회사는 모델을 가진 다른 경쟁자에게 취약하지만, 회계사가 직접 서명하고 법적 책임을 지며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회사는 훨씬 끈끈한 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세콰이어 캐피털과 같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들은 다음 시가총액 1조 달러 기업이 '서비스 기업으로 위장한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많은 창업자가 AI 도구를 팔 때 클로드나 GPT의 다음 버전이 자신의 제품을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시킬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도구가 아니라 '결과물’을 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델이 개선될수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은 낮아지고 속도는 빨라지며 경쟁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퀵북스라는 소프트웨어에 연간 1만 달러를 쓰고 회계사에게 12만 달러를 쓰는 회사가 있다면, 미래의 전설적인 기업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아예 ‘장부를 마감해 주는 서비스’ 자체를 제공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능’과 '판단’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지능의 영역이지만, 무엇을 다음에 만들지 결정하는 것은 판단의 영역이다. AI는 이미 지능의 임계점을 넘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나 데이터 분석 같은 업무에서 인간을 대체하거나 보조하고 있다. 하지만 경험과 직관, 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판단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현재는 AI가 전문가의 손을 빌려 생산성을 높여주는 ‘코파일럿(Copilot)’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점차 고객에게 직접 결과물을 판매하는 '오토파일럿(Autopilot)'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토파일럿 비즈니스를 구축하려는 창업자들에게는 '아웃소싱’이 강력한 쐐기 역할을 한다. 어떤 업무가 이미 외부 업체에 맡겨지고 있다면, 그 회사는 이미 해당 업무가 외부에서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고 예산도 확보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영역을 AI 네이티브 서비스로 대체하는 것은 조직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공급업체를 교체하는 작업이기에 훨씬 침투하기 쉽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기업이 법무법인에 맡기는 NDA 초안 작성 같은 업무가 대표적인 공략 대상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인력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AI가 1인당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의 상한선을 높여주지만, 여전히 면허를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 특히 회계나 법률처럼 규제가 강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역설적으로 AI 도구가 발전할수록 숙련된 전문가를 확보하는 비용은 더 비싸질 수 있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가 AI를 이용해 기존보다 3배 많은 사건을 더 적은 수고로 처리하게 된다면, 그들은 굳이 회사를 떠날 이유가 없어진다. 스타트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하고, 결국 마진의 이점이 인건비 경쟁으로 상쇄될 위험이 있다.

또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빅테크 기업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도 변수다. 앤스로픽은 이미 금융 분석과 회계 처리를 위한 에이전트 기능을 출시했고, 오픈아이 역시 액센추어나 맥킨지 같은 거대 컨설팅 펌과 파트너십을 맺고 에이전트를 기업 워크플로우에 직접 투입하고 있다. 기초 모델 자체가 서비스 계층을 직접 공략하기 시작하면 AI 기반 서비스 스타트업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한번 '책임 계층’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모델은 결과물을 복제할 수 있지만, 고객이 실제로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전문적 관계와 규제적 책임을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산업에서 AI 서비스 비즈니스를 시작할 것인가가 성패를 가른다. 단순히 마진율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에 강력한 '강제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회계 분야가 좋은 예다. 최근 몇 년 사이 수십만 명의 회계사가 업계를 떠났고 기존 인력은 노령화되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 수주를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기업들은 AI 도구를 도입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변한다. 공급 부족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반면 충분히 수익을 내고 있고 변화의 절박함이 없는 분야는 AI 도구를 팔기가 훨씬 어렵다.

보험 중개나 의료 미수금 관리 같은 영역도 유망하다. 보험 중개는 표준화된 지능 작업이 주를 이루며 시장이 매우 파편화되어 있어 단일 지배자가 없다. 의료 코딩이나 청구 업무 역시 복잡한 규칙 기반의 작업으로 AI가 수행하기에 적합하며 이미 아웃소싱 시장이 성숙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처음부터 직접 서비스 주체가 되어 전체 과정을 통제하는 모델이 승산이 있다. 소프트웨어만 팔아서는 변화시키기 어려운 낡은 산업일수록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술을 내재화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벤처 투자자의 관점에서 볼 때, 서비스 비즈니스가 소프트웨어와 똑같은 마진 프로필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80%의 마진을 기록하거나 인력 추가 없이 무한히 확장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시장보다 수십 배 큰 시장에서 50% 이상의 마진을 유지하며 반복적인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괴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 서비스는 소프트웨어가 되지는 않겠지만, 점점 더 소프트웨어와 닮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시장에서 책임과 신뢰를 확보한 기업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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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Eric Han

Posted on

2026/03/16

Updated on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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